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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의 색과 질감을 결정하는 소성 조건의 정밀 조절법
    도자기 2025. 6. 14. 10:52

    1. 도자기의 산화와 환원 분위기의 기본 개념

    도자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소성(firing)’입니다. 이때 가마 속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에 따라 ‘산화 분위기’와 ‘환원 분위기’로 나뉘며, 이 분위기 차이가 도자기의 색상과 질감을 결정짓습니다.
    산화 소성은 가마 내부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어 금속 산화물이 그대로 유지되게 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환원 소성은 산소 공급을 제한하여 금속 산화물이 산소를 잃고 다른 성분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같은 재료라도 이 분위기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색상과 표면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도예가들은 이 조절을 매우 정밀하게 다룹니다.


    2. 도자기의 철(Fe₂O₃) 함량과 분위기에 따른 색상 변화

    도자기에서 가장 흔하게 포함된 금속 성분인 철은, 소성 분위기에 따라 색상이 극적으로 변합니다. 예를 들어 철분 함량이 1~2% 정도일 경우, 산화 소성에서는 연한 황갈색이나 붉은 갈색 계열의 색상이 나타납니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 환원 분위기를 적용하면 회녹색이나 회색, 또는 옅은 청색으로 변화합니다.

    철 함량이 4% 이상이면 산화 소성에서는 진한 적갈색이나 붉은 벽돌색에 가까운 색이 나오지만, 환원 소성을 적용하면 검은색 또는 금속광이 도는 짙은 회색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한국 옹기의 붉은 갈색은 철분 함량 3~5%의 점토를 산화 분위기에서 약 1250도 전후로 10시간 이상 유지 소성하여 얻습니다. 반면에, 같은 점토를 1300도까지 가열하고 1100도에서 환원 소성을 시작하면 깊고 어두운 회녹색 계열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도자기의 색과 질감을 결정하는 소성 조건의 정밀 조절법


    3. 도자기의 구리(CuO)의 비율과 환원 소성의 극적 효과

    구리는 색상 변화가 가장 극적인 금속 산화물입니다. 산화 소성에서는 구리 함량이 0.3%~1%일 때 연녹색부터 짙은 초록색까지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동일한 구리 비율로 환원 분위기를 적용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0.5% 정도의 구리 산화물이 포함된 유약을 사용하고, 약 1050도에서 환원 소성을 시작하여 1270도까지 올린 후 약 1시간 이상 환원 분위기를 유지하면 진한 붉은색 또는 자줏빛 도자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분위기 전환을 너무 늦게 하거나 유지 시간이 짧으면, 색이 흐리거나 고르지 않게 발색됩니다.

    구리 적색 유약은 특히 민감해서 분위기 전환 시점, 최고 온도, 유지 시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원하는 색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항상 실험과 기록이 필요합니다. 많은 도예가들이 이 구리 레드의 발색을 위해 수십 번씩 테스트를 반복합니다.


    4. 도자기의 코발트(CoO)와 파란색 발색의 안정성

    코발트는 비교적 안정적인 발색을 보여주는 금속 산화물입니다. 코발트가 0.1%만 들어가도 선명한 파란색이 나타나며, 비율이 0.3%를 넘으면 깊은 남색에 가까운 색상이 됩니다.

    산화 소성과 환원 소성 모두에서 파란색은 유지되지만, 환원 소성에서는 더욱 깊고 그윽한 색감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0.2%의 코발트를 투명 유약에 섞고 환원 소성을 1100도부터 시작하여 1280도까지 올린 후 30분 유지하면, 마치 유리 속에 푸른 물결이 흐르는 듯한 깊은 파란색이 나타납니다.

    코발트는 과도하게 사용하면 색이 지나치게 짙어져 표면에 ‘얼룩’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0.5%를 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유약의 점도와 두께에 따라 색의 밝기와 광택이 달라지므로, 발색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세밀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5. 도자기의 소성 전환 시점과 유지 시간이 주는 차이

    환원 소성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요소는 ‘분위기 전환 시점’과 ‘유지 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환원 분위기를 너무 늦게 시작하면 철이나 구리 성분이 이미 산화된 상태가 되어 환원이 일어나지 않거나 발색이 약해집니다. 보통 1050~1100도 사이에서 환원을 시작하며, 1270~1300도에서 30분~2시간 정도 유지해야 안정된 색상과 질감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온도 및 시간 조절은 도자기의 표면 질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낮은 온도에서 짧게 소성하면 매트하고 건조한 질감이 나타나며, 고온에서 환원 분위기를 충분히 유지하면 금속광택이나 유리질 질감이 도자기 표면에 도드라집니다. 특히 철 성분이 많은 경우에, 고온 환원 소성 시 금속 결정이 형성되어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주기도 합니다.


    6. 도자기의 질감은 유약과 분위기의 상호작용 결과

    도자기의 질감은 단순히 유약의 종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약 속 금속산화물과 소성 조건의 상호작용이 최종 질감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산화 소성에서의 유약은 고르게 녹아 유리처럼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지만, 환원 소성에서는 금속이 반응해 표면에 미세한 결정이나 광택이 형성되며 더욱 복합적인 질감을 형성합니다.

    특히 환원 분위기에서 유약 내 금속 성분이 가스 형태로 이동하며 재결정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유약의 농도와 두께, 소성 속도 등이 질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도예가들이 이러한 질감 효과를 의도적으로 설계해 예술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마무리: 정밀한 조절이 만드는 도자기의 깊이

    도자기의 색과 질감은 재료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금속 성분의 비율, 소성 온도, 분위기 전환 시점과 유지 시간까지 정밀하게 설계해야 비로소 의도한 색상과 촉감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도예는 예술이자 과학입니다. 반복된 실험과 기록 속에서 자신만의 조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은 어려운 만큼 깊은 만족을 줍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반응의 결과는 세상에 하나뿐인 도자기 한 점으로 완성디되고, 그 안에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장인의 손끝과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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